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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 2021-03-26 16:41:16 , Hit : 7100 )
제목   이북실향민사회 역대 총 14명 국무총리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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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지하 만인지상 기용돼 국가사회발전 선도
김영삼 정부 황금기 이뤄...이회창, 이영덕, 이홍구, 이수성
노태우 정부에서도 강영훈, 정원식, 현승종 총리 활약

건국 이후 2021년 3월 현재 제46대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역대 이북출신 총리는 총 14명이 배출됐다.
장면 총리와 백두진 총리가 2번 역임한 것을 포함하면 16명이 배출된 것으로 전체에서 출신지별 분포로 보면 약35%의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특히 함북 무산 출신의 함태영 3대 부통령 시절, 대한민국 정부는 이승만 대통령(황해 평산), 백두진 국무총리 (황해 신천) 등 서열 1-3위가 모두 이북출신이었다.
이처럼 이북출신들은 각계각층에서 활약했는데 특히 정계진출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국무총리에 다수 기용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북출신 총리를 다시 출신도별로 살펴보면 평남 6명, 황해 4명, 평북·함남·함북·미수복경기가 각각 1명이다. 평남 강서에서 제18대 노신영 총리와 제27대 이영덕 총리가 나왔고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21대 강영훈 총리, 23대 정원식 총리, 24대 현승종 총리 등이 기용돼 금자탑을 이뤘다.
또 김영삼 정부에서도 제26대 이회창 총리, 제27대 이영덕 총리, 제28대 이홍구 총리, 제29대 이수성 총리 등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노신영 총리, 현승종 총리, 이영덕 총리는 모두 평양고보를 나온 동문이기도 하다.
이북 출신 총리 중 재임기간이 제일 길었던 총리는 제9대 정일권 총리로 64년 5월10일부터 70년 12월 20일까지 무려 6년7개월간을 재임, 역대 최장수 기록을 세웠고 장면 총리는 제2대 제7대, 백두진 총리는 제4대 제10대 등 두 번씩 기용됐다.
제26대 이회창 총리는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또 노무현 정부 시절 헌정사상 최초로 평양 출신의 한명숙 여성총리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북출신 총리의 평균 재임기간은 총리를 두 번 역임한 장면 총리와 백두진 총리의 재임기간을 합치면 약 1년10개월이고, 정일권 총리를 제외하면 약1년3개월이다. 2년이상 재임자는 정일권 총리를 비롯해 노신영 총리 2년3개월, 강영훈 총리 2년1개월 등이다.
하지만 총리를 비롯해 총리서리, 내각수반, 총리권한대행 등을 포함하면 이북 출신 지도자들의 활약은 더욱 빛이 난다.
제1공화국에서는 평북 영변 출신의 이윤영 총리서리가 있고, 백두진 총리 역시 서리를 거쳤다.
제2공화국에서는 평북 용천 출신의 장도영 전 육군참모총장이 내각수반을 역임했으며 제5공화국에서는 유창순 총리와 노신영 총리가 각각 서리를 거쳐 총리에 등용됐다. 또 황해 장연 출신의 신병현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도 84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맡았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강영훈 총리와 정원식 총리가 서리를 거쳐 총리에 기용됐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평북 용천 출신의 장상 전 이대총장이 총리인준을 받지 못하고 20일간의 국무총리 서리를 지내고 정부청사를 떠났다.
평남 중화 출신의 장면총리는 일찍부터 이승만 대통령에 발탁되어 주미대사로 활약했고, 부산 피난 시절 국무총리에 올랐다. 장 총리는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제2공화국에서 내각책임제하의 총리를 역임해 실질적인 국가원수의 역할을 수행했으나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총리취임 9개월만에 정계에서 물러났다.
우리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를 기록한 함북 경원 출신의 정일권 총리는 5.16으로 얼룩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취임, 한일회담의 조기 타결, 식량 증산 및 확보, 물가 안정 등에 노력했다.
평남 강서 출신의 노신영 총리는 전두환 정권 말기에 안기부장에서 총리로 영전, 당시 민정당 노태우 대표와 ‘노·노체제’의 한 축을 이루게 되면서 `차기주자의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가 안기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중국과 첫 공식대화의 물꼬를 트게 한 중국여객기 불시착 사건, 사할린 상공에서 발생한 소련기에 의한 대한항공기 격추사건, 아웅산 테러 암살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고,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의 범인축소 조작사건이 불거지자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용퇴, 32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평북 창성 출신의 강영훈 총리는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뒤 영국대사 및 아일랜드대사, 로마교황청대사, 외무부 본부대사를 지냈고 1988년에는 제13대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었다. 강총리의 재임 기간중인 89년 3월에는 문익환 목사가 김일성과 회담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어 같은해 전대협대표인 임수경의 평양방북이라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90년 9월 4일에는 서울에서 강총리와 연형묵 북한 총리가 만나 역사적인 남북한 총리회담이 처음 개최됐다.
황해 재령 출신의 정원식 총리는 야권의 정치적 공세로 노재봉 총리의 경질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임명됐다.
정총리 재임중 91년 9월 28일에 유엔총회에서 북한의 유엔가입안이 통과됐고, 같은해 12월13일 서울에서 열린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정총리는 연형묵 북한총리와 남북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등 남북 교류의 기본 틀을 짠 이른바 남북 기본합의서를 탄생시켰다.
이듬해 92년 2월18일에는 평양에서 정총리와 연형묵 북한총리가 남북고위급회담을 갖고,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남북 기본합의서 본문을 교환, 발효시켰고 이어 20일에는 김일성 주석을 예방키도 했다.
미수복경기 개성 출신의 이홍구 총리는 노태우 정부 때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 주 영국 대사를 역임했다. 김영삼 정부 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 그리고 1994년 12월17일부터 1995년 12월17일까지 제28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1997년에는 15대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 나섰으나 중도 사퇴했고, 정권 교체 후 김대중 정부의 첫 주미대사를 지냈다.
한명숙 총리 시절인 2006년 9월1일에는 정부가 ‘대북비난 전단 살포 중단’을 촉구해 많은 탈북자단체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있었고, 2007년 2월27일부터 3월2일까지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이 평양에서 개최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평안북도 삭주 출신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우여곡절 속에서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해 이북출신 총리가 배출되지 못하는 비운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황해 연백 출신의 황교안 법무장관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며 2015년 6월부터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을 수습하며 2017년 5월11일까지 이북출신 국무총리의 맥을 이어갔다.
한편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제1위 보좌기관으로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부를 통할하고, 국무회의 부의장을 겸한다.
국무총리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지명한 후 대한민국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된다. 현역 군인은 전역하지 아니하면 국무총리가 될 수 없으며 국무총리 임명에는 재적 의원의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의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다. 현역 국회의원을 임명시에는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고도 국무총리에 임명될수 있다.
국회는 국무총리 지명동의안을 표결하기 전에 국무총리로서 적합한 인물인가를 심사하는 인사청문회를 거쳐(국회법 제65조의2 제1항) 동의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하여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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